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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어느 별 아래김학구
김수현 기자  |  kangnam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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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1.10  10:5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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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기 마련이다. 며칠 전 겪었던 일이 그러하다. 카톡 소리가 나기에 습관적으로 열고는 무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너무나 뜻밖인 부고가 온몸을 굳게 만들었다. 함께 만나던 친구에 관련된 내용이어서 도무지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친구 부인에 관한 부고였다면 차라리 다행이라고 여길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이건 정반대인 상황이 아닌가. 그 친구 아내가 십수 년 전에 뇌경색으로 쓰러졌었고 거의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 모임에서 만날 때마다 그에게 순간순간 드리우는 어두운 그림자를 바라보며 늘 마음이 저렸다. 언제부턴가 같이 자리하던 친구들과도 아내에 관한 말은 금기어가 되었다. 그가 없는 동안 조심스레 지금의 상태를 잠깐씩 들어볼 뿐이었다.

한때 대기업에서 촉망받는 간부로 능력을 인정받았고, 사주의 전격적인 믿음으로 앞날이 마냥 밝기만 한 그였다. 사람 품성이 워낙 좋고 믿음 또한 깊어, 자연스럽게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IT 산업이 미래 산업을 지배할 것이라는 남다른 판단으로,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대기업을 나와 독립된 사업체를 꾸려 상당한 부를 일구기도 하였다.

그런 상황을 마귀가 시샘이라도 한 것일까. 부인이 쓰러짐으로써 날아오르던 날개 한쪽을 꺾이고 말았다. 친구는 아내를 회복시키려는 일념으로 모든 걸 접었다. 치유할 수 있는 방도를 찾아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부인은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그렇게 힘들고 어두운 길을 내색 한번 없이 꿋꿋이 지켜오던 터였다. 그런 미담이 알려지자, 다니던 교회에서는 만장일치로 열부상을 제정하고 표창까지 했다.

기약 없는 세월이 한없이 흐르면서, 모래알만 한 희망으로 지켜보던 처가에서조차 이제 그만 애쓰라며 요양원으로 보낼 것을 권유했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아버지 건강을 염려하던 자녀들도 조심스레 만류했으나, 그런 소리 하려면 내 집에 발걸음도 말라며 호통을 쳤다는 그였다.

십 년 넘게 곁에서 지키며 손수 수발을 들었던 터라, 환자 돌보는 손길은 그야말로 전문가를 뺨치는 수준이었다. 석션부터 링거를 꽂는 것은 물론이고,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 수시로 몸을 돌려주는 일, 대소변 처리와 신체 청결을 유지하는 것 등은 기본이라고 했다. 정기적인 검진 때문에 병원을 방문할 때도 서투른 간호사에게 맡기기 싫다며 본인 손으로 모든 걸 대신한다는 말도 들었다. 그토록 최선을 다하며 아내 곁을 지키던 그였기에, 그가 떠났다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지난 연말쯤에, 그 친구가 집을 비우기 어려운 사정을 헤아려, 우리 몇몇이 그의 집 가까이 가서 함께 식사했었다. 오래 머물 수는 없으니 이해해 달라는 말을 뒤로 자리를 뜨는 모습을 본 것이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전과 달리 얼굴은 많이 여위었고, 그날따라 등이 푹 수그러져 있어서 우리 모두의 마음을 아리게 했다.

사망한 경위도 듣고 보니 충격적이고 안타까움이 많이 남는 대목이 있었다. 아내 약을 타려고 다녀오던 그가 집 주차장까지는 잘 왔었나 보다. 경비원이 보자 하니 차가 금을 물고 비스듬히 서 있어서 차창을 두드렸는데, 안에 있는 사람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더란다.

사고를 직감하고 바로 119를 불러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이미 시간이 지체되어 아무런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좀 더 일찍 발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그렇게 의식을 놓고 한동안 지나다가 잠깐 정신이 돌아오는 듯했지만, 갑자기 상황은 악화하여 기어이 다시 못 올 길로 떠나갔다고 한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버티고 헌신해 오던 몸과 마음이, 모래시계 속 모래알처럼 서서히 흘러내려 마침내 탈진에 이른 것이 아니겠는가. 병석에 있는 아내가 눈에 밟혀 어찌 눈을 감을 수 있었단 말인가. 친구들과 함께하는 카톡방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올렸던 글귀가 마음에 파고든다.

“내 모습에서 예수님이 나타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늦은 밤, 허탈한 마음을 가누지 못한 채 발걸음을 옮기면서, 삶에 대한 깊은 회의와 더불어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거리에는 여느 때처럼 사람들이 오가고, 차들은 어디인지 모를 곳으로 바삐 질주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은 무엇 하나 달라진 것이 없다. 내 안에 세상이 온통 뒤죽박죽된 것 외에는.

헤겔은 존재存在와 무無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대논리학』에서, “순수한 존재와 순수한 무는 동일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존재와 무는 동전의 앞과 뒤일 뿐이다. 존재하는 것은 반드시 사라진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삼라만상과 우리 인간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대명제다. 서글픈 것은, 서로가 공유하고 나누던 정감을 접어야 하고 기억의 저편으로 상대에 대한 기억과 인식을 지워야 하는 데 있다.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흐릿하게 명멸하는 별들과 눈길이 만난다. 저 별들만큼이나 얼마나 많은 간절한 사연들이 사람 사는 이 세상에 존재할까. 안타까움과 슬픔을 모두 별로 엮어내어 하늘에 매달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돌아오는 길에, 슬픔은 어느 별 아래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쓰린 가슴을 달래본다.

약력

<한국수필> 신인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수필작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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