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라마를 보면 이 삼 십대 기업 대표인 젊은이가 주인공이 되어 중년의 부하 직원에게 비인격적인 언어 살인을 하고, 기업을 두고 형제간의 모함과 암투, 얽히고설킨 출생의 비밀을 다루고 있다. 자기에게 헌신한 여자를 버린 몰염치한 남자 주인공에 맞수로 등장하는 재벌 2세, 버림받은 여자와 재벌 2세의 사랑으로 급반전되는 전개의 식상한 드라마. 물론 헛바람이 잔뜩 들어 노력보다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병든 젊은이가 이 세상에는 적지 않다. 그러나 대표님이나 회장님 등 근사한 명패를 갖지 못한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위치에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꿈을 꾸며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드라마 속의 기업들은 부도덕하고, 일확천금을 쫓는 썩은 젊은 영혼이 많은지 모르겠다. 그럴듯한 가업을 물려줄 게 없는 대부분의 부모와 받을 게 없는 자식들의 박탈감이 행여 성실하고 우직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폐가 되지는 않을까 염려스럽다.

부모들 대부분은 자식이 자기보다 안락하고 안정된 직업을 갖고 살기를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소위 성공한 직업군이라 불리는 몇몇 선망하는 직업은 자식이 가업으로 잇기를 원하지만, 사회적으로 그렇게 선망하는 직업이 아닐 경우, 부모 또한 자식이 자기 직업을 물려받는 것을 탐탁치 않아한다.

그러나 요즘은 인식이 달라지면서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다. 젊은이의 취업난이 연일 뉴스의 중심이 되기도 하고, 조기 명퇴 불안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자기 직업에 대한 당당한 인식의 변화를 종종 보게 된다. 무슨 일이 하건 겉보기에 번듯한 직업은 아니어도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그래서 보기가 좋다.

강남 롯데백화점 뒷문 쪽에 구두수선과 열쇠를 복사하는 한 평쯤 되는 작은 가게가 있다. 내가 보아온 세월이 30년이 넘었지만, 아마 더 오래전부터 그 수선집이 그 자리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얼굴이 환한 아저씨에게 구두 굽을 갈고 열쇠도 복사하고, 때로는 상품권을 사기도 했다. 별로 말이 많지 않은 아저씨는 시원시원하게 구두 굽을 능숙하게 잘 갈고 열쇠 복제도 잘하여 복제한 열쇠가 뻑뻑해 문을 열 때 신경 거스르는 일도 없다. 가끔은 예쁘장한 부인이 나와 식사를 함께 하기도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가게에 직원 한 사람이 더 늘었다. 아버지를 쏙 빼닮은 희멀건 하게 잘 생긴 아들이 가게에 나와 아버지의 기술을 전수 받고 있다. 돌아가는 기계에 고무창을 깎아 다듬기도 하고, 밑창에 접착제도 붙이기도 한다. 아버지 보기에 미숙한지 이렇게 하라고 시범을 보이면 열심히 배우는 아들, 함께 일하는 부자지간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아버지에게 구두 수선 일을 배우는 젊은 아들은 겉만 멋들어서 하릴없이 거리를 떠돌며 방황하는 또래의 허황된 청년과는 아주 다르다. 아주 야무지게 잘 자란 청년이어서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주일에 두 번 아침 일찍 그 앞을 지나가는데 아들이 먼저 나와 가게 문을 여는 것을 본다. 일부 젊은이들의 나태하여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얹혀사는 캥거루족이 되어, 부모에게 짐이 되고 있다. 그런 젊은이들과 대비가 되면서, 남의 아들이지만 앞날을 축복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어쩜 어설픈 직업보다 훨씬 짭짤한 수입이 되는지도 모른다. 백화점 서문 앞 길 건너에도 구두 수선집이 있어 지나가다 구두 굽을 갈기도 하는데, 그 곳엔 중년의 부부가 함께하는 시간이 많다. 하루는 구두 밑창을 갈며 작은 쪽의자에 앉아 기다리는데, 하도 두 사람의 대화가 구수하고 정감이 있어서 말을 건네 보았다.

“금슬이 참 좋으신가 봐요.”

사람 좋게 생긴 아줌마는 남편이 고맙다고 한다.

“성실하고 아쉽지 않게 살만큼 돈을 버니 나는 너무 행복해요.”

“아, 그래요. 얼마를 버시는데요?”

하고 물으니, 그 말에는 대답 않고 아저씨가 불쑥 말한다.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아도 2-3년은 배워야 하는 기술이유.”

그러면서 이 일도 길목과 기술이 좋아야 수입이 괜찮다며, 다른 일을 하다가 이 직업으로 바꾸었는데 지금은 아주 만족한단다. 남의 눈치를 안보고 일한 만큼 돈도 벌고, 사람들의 헤진 신발을 고쳐주니 얼마나 좋은 직업이냐고 말한다.

“아, 예 그렇겠지요?”

하고 대답하면서 아무나 쉽게 하는 일이 아님을 강하게 맞장구 쳐 주었다. 아저씨의 그 말에는 남들은 구두 수선하는 일을 가볍게 볼지 몰라도 다 기술과 경험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자부심이 담겨 있다. 천을 덮은 무릎에 남이 신던 구두를 올려놓고 정성껏 수선하는 아저씨의 진지한 표정에서 참 착한 인성이 느껴졌다.

내가 가끔 가는 곳으로, 여주의 작은 만두집이 있다. 시어머니의 대를 이어 이제 손자가 운영하는데, 나는 식당에 가면 새로 번듯하게 지은 별채보다 작고 낡아 비좁지만 더 정감이 가는 예전 할머니가 하던 본채에 가서 앉는다. 깨끗하고 편하게 단장해 놓은 공간도 좋지만, 낡아서 시간의 박물관에 와있는 듯한 편안함이 나는 더 좋다. 그곳처럼 이 작은 구두 수선가게에도 시기와 모함이 없는 곳에서 보여주는 자부심과 편안함이 있다. 조그만 구두 수선가게도 비록 작은 공간이지만, 대한민국의 젊은 청년이 아버지 대를 이어 열심히 일하는 아름다운 가업 계승에 조용히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