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난데없는 부엉이 소리가 책 속 삼매경인 고개를 들게 했다. 지난 수 십 년 뻐꾸기 소리에는 익숙해져 있지만, 밤만 되면 지척에서 구슬피 우는 민가의 부엉이는 처음. 벌써 열흘을 넘겼다. 인근에 부엉이 울 만한 나무 있는 것도 아니다. 서재 창문 바로 앞인 듯 내게 들으라는 듯 야심한 밤에 때로 의미심장하게 와 닿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른 아침부터 전화벨이 울렸다. 선배였다. 일과 한가해진 저녁쯤 식사 함께하자는 선배 전화가 오곤 했었다. 인사 생략한 채 내게 물었다. 아무개 소식 들었어? 첫 마디에 뭔가 좋지 않은 상황을 예감했다.

가장 최근 소식은 군대 있을 때 청첩장이었는데요. 부대 주소를 어찌 알고 보냈더라고요. 아무개가 밤에 잘 자고 아침에 일어나지 않았던가 봐. 끊겼다 싶으면 들려오는 부음(訃音), 예상 못 한 충격도 그렇거니와 불현듯 부엉이가 떠올랐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추앙받는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Minerva)이지만 문화권에 따라 부음 기별하는 역할도 한다더니.

아무개는 대학교 입학해서 처음 만난 외지 친구였다. 이과대학 수석을 차지하며 교수들 자부심을 한껏 높여 주기도 했던 학과 동창. 나대지 않고 외려 대화를 즐기던 친구였다. 말수 적진 않아도 반드시 자신이 말한 만큼 상대의 말을 경청할 줄 알았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는 늘 차분했었다. 몇 마디 나누다 보면 친구의 깊이를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자신의 인생 목적은 첫째 농구, 둘째도 농구, 셋째는 바둑이라며 웃곤 했었다. 장례식 참석 못했지만, 그 시절 친구가 불쑥 내게 물었던 질문은 오랜 세월 뒤에도 남아 있다. 살면서 행복했던 적 있어?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그러니까 어느 순간 행복을 느꼈을 수 있겠지만, 네 삶이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 있냐고? 부연 설명 따른 질문에 곰곰 생각하던 내 입에서는 아니라는 말이 가까스로 나왔었다.

연락 끊긴 지 오래라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졸업 뒤 공군 장교로 복무했으며 학과 동기와 결혼, 딸 하나 낳고 성격대로 그럭저럭 살았던 모양이다. 평소 아주 건강한 편 아니어도 병원 출입하거나 자리 보존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단지 당뇨기 조심했다던 친구. 떠나기 며칠 전 지금은 미망인이 된 부인에게 그런 말을 했단다. 결혼해 살면서 행복했다고.

무려 한 세대 뒤 스스로 던졌던 의문을 부정하고 떠난 셈. 어쩌면 그랬던 삶을 벗어나기 위해 행복을 제대로 선택했을지 모를 일이다. 부음을 전해 받은 날 부엉이 소리도 그쳤다. 뭔가 하고픈 말 있었나? 친구가 더욱 행복한 곳에서 삶 속에 자신이 했던 말을 곱씹고 있지 않을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동창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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