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근하

난 ‘길’이라는 것에 대해서 남다른 상념을 갖고 있다. 그저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아스팔트길일지언정 그 길들은 제각기 나름대로의 색깔과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포근한 길, 가난한 길, 사랑스러운 길, 친구 같은 길, 화려한 길, 무서운 길, 사나운 길, 지루한 길 등등. 그 많은 길들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길이 있다.

1km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길이지만 난 그 길만 지나가면 까닭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포근해지는 것이다. 그 길 양편에 우거진 나무숲의 그늘에 천천히 차를 몰고 가면, 마치 고향에 온 듯한 아늑함과 어머니의 자궁 속에 회귀하는 듯한 안도감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안개라도 내린 새벽에 그 길을 지나가면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곤 했었다. 그래서 난 그 길을 일부러 찾아 달리곤 하였다.

물론 다른 길에서도 나는 각기 나름대로 다른 느낌들을 받으며 지나다녔다. 그 느낌들이 좋은 것이든, 싫은 것이든 그 길 모두는 나에게 아주 소중한 것이다. 길을 지나가면서 난 내 삶의 한 자락씩을 그 길 위에 남겨놓기 때문이다. 내 삶의 순간순간이 그 길 위에서 이루어지고 그 길로 인해 내 삶이 존재 가치를 부여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길에 대해 느끼는 남다른 상념은 ‘길은 바로 향수’라는 것이다. 길이 길이라면 분명 어떤 종류의 길이라도 향수의 한 여운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향수가 스며있지 않은 길은 살아 있는 길이 아니라 이미 죽은 길이다.

모든 길에는 나름의 영혼이 있을 것이다. 필시 어떤 삶의 한 곡절이라도 지니고 있을 터이므로 살아 있는 영혼이 없을 리 없다. 그 모든 길의 영혼을 한곳에 불러모으면 향수라는 하나의 빛으로 될 것이다. 그래서 길은 향수이다.

길이 향수여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길은 바로 ‘나’에게 향수이기 때문이다. 내가 떠나는 시작도 길이었고 내 돌아옴의 동반자도 바로 그 길이기 때문이다. 내 향수는 길 속에 묻혀 있다. 일생 떠나고 돌아온 수많은 길에 나는 향수 한 조각씩을 떼어놓고 온 것이다. 난 수많은 길에 나의 향수 조각을 무수히 뿌려놓았다.

나는, 아니 우리 모두는 지금 길 위에 서 있다. 인생이라는 길고도 짧은 길 위에 서 있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마다 우리는 한 조각 조각의 향수를 그 길 위에 뿌릴 것이다.

내가 바란다면, 내 죽음의 마지막 길에 내가 뿌려놓은 모든 향수 조각들을 거두어 모아 불태워버리고 싶다. 찬연한 빛으로 타오르는 불꽃을 보며…….

오늘도 난 길 위에 서 있다.

[작가소개]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