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강경자

일을 손 놓으면, 등지고 있는 산 하나 작은 작대기에 괴어놓은 듯 마음 불안한 내가 이틀째 이불 속에 누워 있다. 뼈마디가 노곤하고 짜릿한 것이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교란작전 중이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삭신 아린다는 말이 절로 입안에서 여문다. 낮 동안 녹았다가 밤에 다시 얼기를 반복하는 베란다 창에 걸린 얼음은 열 벌쯤 되는가. 얼음이 두꺼워서 유리창이 내려앉지는 않을까, 누가 시킨 것처럼 그것만 걱정스럽다. 몸을 다시 뒤척이다가 모양내 옷을 입고 손가락으로 생선을 뒤척이던 중년 여자 얼굴이 언 듯 스친다. 꿈결인가 싶으면 창이 환하고 몇 시쯤인가 싶으면 또 잠결이 연결되었다.

짧고 긴 두 밤이 지났다.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자니 밥때를 넘긴 것 같다.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씨줄과 날실로 촘촘하던 시간이 헐렁해서 건들바람이 지나는 것 같다. 언제 무슨 정신에 가져다 놓았는지 머리맡에 책이 수북하다. 베게 삼지도 못할 것을 부린 듯이 널린 책 속에서 책등이 닳아진 노트 한 권 붙잡았다.

무심코 펴진 자리 날짜도 없다.

“금방 갈 걸 뭐 하러 왔니?”

엄마 목소리를 휘갈겨 적어놓았다. 늦가을 일이다. 문득 지하철역 스크린 도어에 적힌 동시가 떠올랐다.

봄눈/ 유희윤

“금방 가야 할 걸 뭐하러 내려왔니?”

엄마는

시골에 홀로 계신

외할머니의 봄눈입니다

눈물 글썽한 봄눈입니다.

눈물 글썽한 건 울 엄마뿐이 아니다. 다시 노트에 눈을 둔다.

“그 머나먼 길을 여비도 많이 들 텐데……”

‘숙제처럼 미룬 일이어서요.’ 내 묵음은 지금까지도 묵음이다. 石花(굴)가 나는 때여서 엄마를 뵙고 싶었다. 밤잠도 잃어버리고 삶의 단맛도 잃어버린 엄마가 유일하게 입맛 다셔 잡수는 것이었다. 석화 한 그릇, 오리 두 마리, 향기 좋은 매생이 한 그릇과 꼴뚜기 한 그릇을 사 들고 엄마 집에 갔었다. 교통이 편리하다고는 하나 아침에 나서서 오후 다섯 시에 도착했으니 하룻길이었다.

내가 잘 도착했는지 그래서 심심해하시던 엄마와 잘 놀고 있는지 늦은 밤에 전화한 언니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시댁 식구들 모임이라더니 식구들끼리 모여 기분 좋은 술을 한잔하셨을까. 형부가 두통이 심해서 월요일에 예약된 뇌 사진을 찍을 예정이라니, 뇌 사진을 찍을 정도로 머리가 많이 아프신 지도 모르고 살았다. 참 죄송하다. 시간이 흘러가니 격노했던 감정들은 희미해지지만 아프고 쓰라렸던 마음은 그대로 있다. 그다음 굵은 마침표가 있다. 언제 어떻게 다친 마음이기에 아직도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짧은 줄이 그어져 있고 ‘내 마음과 살림을 상대가 알았던들 그랬을까. 그 시간을 구해보는 심정으로 방향을 돌려보지만, 마음의 이해도가 다른 상황에 또다시 직면해도 같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이번엔 굵은 마침표가 있다. 나는 아직도 마음 쓰라렸던 부분에 대해서는 용서하지 못했고 화해하지 못했던가 보다. 말뚝처럼 박힌 가시가 처음 찔리는 듯 아프다. 그리고 또 휘갈긴 듯 써진 말. 내가 술을 조금만 먹고도 취하면 엄마가 나를 얼마나 혼내셨는지 등이 오싹했다. 그런데 내가 취한 술을 엄마만 이해하셨다. “얼마나 속이 곯았으면 그랬겠냐.”는 말씀에 대답도 없이 나는 눈물을 쏟았다. 거기까지 읽고 나니 몸이 가라앉고 봄눈 녹듯 스르르 절로 누인다. 나는 어머니의 봄눈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막내가 겨울 깊은 골짜기 눈이다

어릴 적 여름날 가지고 놀던 풍뎅이의 통증이 이랬을까. 사지 잘리고 모가지 한 바퀴 돌려 땅바닥에 뉘어놓고 빙빙 돌기를 기다렸던 풍뎅이가 있었다. 친구들끼리 모여앉아 한 눈으로 바라보자면 풍뎅이는 땅바닥에 날개를 펴고 빙빙 돌다가 문득 날아 마당 어디쯤에서 떨어졌다. 해 질 무렵 어느 구석에서 혼자 돌기를 멈출 때쯤 마당을 겅중거리던 닭이 와서 먹고 나면 하루해가 내려앉았다. 내 몸살은 이제 겨우 이틀뿐인데 푸른 유선이 돋아나던 젖몸살처럼 오한까지 덩달아 한 몸이다. 눈이 내린다면 더 좋겠다. 속 깊은 몸살에 몸 부려 길게 한 눈 감고 나서 눈 뜨면 한 삼 년쯤 지난 시간이라면 좀 좋을 듯도 싶다. 이 몸살은 등짐 지워졌던 10년 세월에 짓누름이다. 이제 부릴 때가 되지 않았느냐 묻는 것 같고 편하게 지내라는 소리도 나직하게 들려온다. 부리고 싶었는데 부리자니 그게 육손인 것을 이제 알게 되는 까닭이다.

“어디 세상에 너 같은 년 있간디……” 엄마 말씀이 들리는 것 같다.

가고 오는 것 한 몸인 것을 내 여태 몰랐던바, 이번 겨울이 지나면 막내를 보낸다. 새로 6학년이 되면 1학년 같은 낯섦으로 새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엄마라는 부름이 이제는 편한 막내를 보낼 일이 이렇게도 깊은 몸살이었던가. 이제야 나는 나를 들킨 몸살에 얼굴을 묻어본다. 더 앓아야겠다. 밤낮없이 겨우내.

봄이 온다는 소식을 이 겨울에 깊이깊이 묻어놓고만 싶다.

[작가소개]

수필가

테마수필 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