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태국

정지암

어릴 적 친구와 우연히 만나 동태찌개를 시켜놓고 밥을 먹는다.

토실토실 살이 찌고 알이 꽉 찬 몸통을 두고 굳이 대가리와 꼬리만 골라먹는 내가 이상해보였는지, “어두일미魚頭一味 라는 말이 있지만 동태머리가 먹을 게 어디에 있느냐.” 며 큼직한 가운데 토막 하나를 국자로 떠서 내 앞 접시에 담으려고 한다. 내가 손사래를 치고 가운데 토막 먹기를 극구 사양하였다.

내가 태어나서 초등학고를 졸업할 때까지 큰형님가족과 같이 살았다.

장손長孫인 조카와 동갑내기라 어지간히 싸우면서 자랐는데, 조카가 나한테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지만 신물이 나고 징그러울 정도로 달라붙어 싸움을 걸어왔다. 조카는 늘 억울해하고 원통해하면서 나를 눈에 가시처럼 미워했다. 어른들은 이유가 어떠했건 삼촌인 나와 싸웠다는 자체가 불경죄에 해당되어 심한 꾸지람을 듣거나 심하면 회초리 세례를 받기 일쑤였다.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눈물을 훔치고 있을 때 나는 혀를 길게 내밀고 조카에게 약을 올리면 조카는 이를 앙다물고 치를 떨었다. 조카가 흥분해서 검은 눈동자가 사라지고 살쾡이 눈이 될수록 나는 더욱 재미있어했다.

큰형님은 술을 좋아하여 귀가 때는 늘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해장국으로 동태 국을 자주 끓였다. 어느 날 조카와 내가 마주앉아 밥을 먹는데 동태 국이 상위에 올려졌다. 내 국그릇엔 살이 찌고 알이든 가운데 토막이 들었는데 조카의 그릇엔 동태대가리와 꼬리가 담겨 있었다. 조카의 입이 오리주둥이보다 더 나온 채, 숟가락으로 동태대가리와 꼬리를 건졌다놓았다 를 반복하며 내 국그릇과 자기의 그릇을 비교한다. 형수님이 조카의 심정을 알아차렸나보다. “아무 말 말고 먹어, 동생들은 국물 맛도 못 본다.” 그래도 조카는 억울한지 입술을 비틀고 눈을 내려 깔고 있다. 조카의 심기가 비틀어져 있으면 약은 올리지 말았어야 옳았는데 국물도 훌훌 소리 내어 먹고 동태 알을 입에 넣었다가 다시 꺼내 바라보며 깨물어 먹지 않고 쪽쪽 빨면서 조카의 염장을 질렀다. 형수님이 조용히 다시 타이른다. “삼촌이잖아.”

나는 삼촌이니까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 것으로 착각하고 무엇이든 조카보다 우선이라 여기며 자랐다. 내가 조카로 태어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스스로 만족하고 행복해 했다. 자잘한 심부름은 늘 조카 몫이었다.

세월이 흘러 내가 철이 들었나보다. 형수님이 출타 중이라 내 어머니가 밥상을 차렸는데 동태 국이었다. 형수님과 같이 내 국그릇에 큼직한 가운데 토막이 들어있고 조카 그릇엔 작은 토막과 대가리와 꼬리만 들어있다. 이번엔 조카에게 약을 올릴 수가 없었다. 왠지 미안하고 부끄러운듯하여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다. 어머니는 왜 내 국그릇에 조카보다 큰 가운데 토막을 넣었을까. 어머니가 매우 못마땅하고 미운 마음까지 든다. 공평하게 나누어 담거나 차라리 조카에게 큰 토막을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 내가 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숟가락을 놓으며 내 국그릇을 조카와 바꾸어 놓았다. 그 이후로 오랜 시간 나는 동태 국을 먹지 않았다. 동태만 보면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내가 꼬리만 준다며 투정을 부리면 “조카니까” 그러시길 바랐다. 먼 훗날 어머니에게 왜 그리했느냐며 따져 물은 적이 있는데, 어머니는 그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형수님도 사람이다. 맛있는 음식이나 좋은 옷이 있으면 시동생보다 자식을 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터다. 그런데도 삼촌이니까 를 주문처럼 외우고 다니며 조카에게 교육했다. 형수님은 나를 품에 안아 키우다시피 하였지만 시동생 대우를 철저히 했다. 내가 말귀를 알아들을 때부터 이승을 떠날 때까지 내 이름을 부르거나 반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나는 한때 형수님의 반듯한 성품을 비튼 적이 있다. <삼촌이니까>는 존경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고 삼촌인 내가 이해하고 어른스럽게 행동하라는 압박으로 여긴 적이 있다. 참으로 속 좁고 경망스러운 생각이라 형수님 뵐 면목이 없다.

조카는 나보다 키가 작고 신체도 약하여 걸핏하면 잔병치레를 한다. 고모님 말에 의하면 어머니 젖이 안 나와 형수님 젖을 많이 먹었다고 한다. 조카가 먹을 젖을 내가 뺏어 먹은 것이다. 그 뿐이랴, 영양가 있고 맛있는 음식도 항상 내가 많이 먹지 않았는가. 억울한 누명 뒤집어쓰고 속상한데 매까지 맞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포동포동 살이 쪄서 무럭무럭 잘도 자라는데 조카는 비쩍 말라 잔병을 달고 자랐다. 그럴 때면 형수님 마음이 어떠했을까. 속이 많이 상했을 것이다. 형수님은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고 조카에게 더욱 엄격하였다.

돌이켜 보면 조카의 몸이 약한 것은 모두 내 탓만 같다. 그래서 조카가 아프다고 하면 겁이 덜컹 난다. 내가 조카에게 잘하는 것이 형수님에 대한 보답이라 여기고 삼촌 노릇해보려고 하지만 조카는 언제나 한발 앞서 나에게 예우하고 집안 대소사를 한 치의 틈도 없이 잘도 챙긴다. 지금도 나는 동태 국을 가까이하지 않는 편이며, 다른 생선도 가운데 토막에는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친구와 먹는 동태찌개에서 인자한 모습의 형수님 얼굴이 아스라이 보인다.

[작가소개]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