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적과 마술피리

이지영

아리아는 이제 절정의 초고음역대로 진입하고 있다. 하이라이트인 신들린 듯한 고음에서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피콜로 같은 목관악기 소리가 들린다. 독일 출신으로 21세기 오페라의 여왕으로 불리는 디아나 담라우의 음색은 파워와 카리스마가 폭발하면서 정말로 밤의 여왕이 격렬히 분노하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들을 때마다 어린 시절 잘못 알던 것을 어른이 되고 한참 후에나 제대로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실소를 짓게 된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4학년 무렵까지 읽었던 소년소녀 세계위인 전집에는 베토벤, 슈베르트와 더불어 당연히 모차르트도 들어있었다. 거의 40년 전에 읽은 위인전집의 내용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까닭은 당시 읽을 책이 귀하여 집에 있는 책을 읽고 또 읽어 거의 외울 만큼 되었기 때문이다. 지방 도시의 변두리에 살던 1970년대 초등학생(당시에는 국민학생)에겐 남아도는 것이 시간이었고 그 시간은 평화롭고 느릿느릿 흘러갔다. 심심하면 아이들과 고무줄놀이를 하거나 기껏해야 동네 만화방에 가는 것이 오락의 전부였다. 집에서는 딱히 놀 거리가 없으니 엄마가 할부로 사주신 세계위인 전집과 계몽사에서 나온 빨간 표지의 동화전집을 줄곧 붙들고 있었다.

모차르트 위인전기 책에는 ‘마적’이라는 오페라가 소개되어 있었는데, 말에 어린 소녀를 태우고 도망가는 듯한 장면이 삽화로 실려 있어서 초등학교 3, 4학년이었던 나는 ‘마적’이라는 단어를 단순히 ‘도적’으로 이해해 버렸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내 기억에는 모차르트가 ‘마적’이라는 오페라를 작곡했고, 마적이란 마귀 같은 도둑 정도의 의미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중반쯤 한국이 자랑하는 소프라노 조수미가 부르는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듣게 되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충격이었다. 과연 모차르트는 저런 높은 음을 낼 수 있는 소프라노가 있을 거로 생각하여 작곡을 했었나 싶었고, 사람이 악기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였다. 그러고도 한참 후의 어느 날, 어린 시절 알았던 “마적”이 마적(魔賊)이 아니라 마적(魔笛) 즉, 마술피리라는 것을 섬광처럼 깨닫게 되었다.

그 깨달음은 매우 늦었지만 내게는 유레카(eureka)와도 같은 발견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모차르트가 ‘마적’과 ‘마술피리’라는 각각 다른 오페라를 작곡했다고 믿고 있었던 셈이다.

하긴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 어디 이뿐이랴.

초등학교 6학년 무렵 텔레비전에서 ‘불에 탄 고기에서는 바람 성분이 나온다’는 뉴스를 듣게 되었다. 바람 성분이 무엇일까 궁금했지만, 말 그대로 그저 공기 중에 있는 어떤 나쁜 성분이라고 여겼다. 중학생이 되고 한참 후에 바람이 아니라 발암(發癌)이라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될 때까지는.

어른이 된 후에도 엉뚱하게 알아들을 때가 많았다.

남편이 사십 대에 들어서 한때 골프에 빠진 적이 있었다. 회사 업무상 필요하다며 이것저것 용품을 장만하더니 골프 채널도 자주 시청했는데, 들리는 말 중에 ‘비거리’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였다. ‘드라이브 비거리’, ‘아이언샷 버거리’라는 말이 나오기에 비거리는 스펠링이 bigori나 vigory인 영어라고 생각하였다. 나중에서야 비거리가 날아간 거리(飛距離)라는 알고는 혼자 피식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이 얘기를 회사 동료에게 했더니 그 동료도 자신이 잘못 알았던 것을 얘기해주었다. ‘기린’이라는 동물은 영어도 기린인 줄 알았다고 했다. ‘캥거루’의 일본어와 영어가 모두 캥거루여서 이와 마찬가지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기린의 영어가 ‘giraffe’라는 알게 되었다며 많이 부끄러워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하였다.

인터넷에서 누군가의 경험으로 보이는 유머를 보게 되었다.

어느 날 미용실에서 예쁜 누나가 머리를 감겨주면서 목덜미도 마사지를 해주어 기분이 좋았는데, “무릉도원이세요?”라고 묻더란다. 그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네, 무릉도원이네요.”라고 대답했더니, 그녀는 조금 놀란 목소리로 “아니요, 물 온도 어떠시냐고요.” 라고 했다는 얘기.

때로 사오정처럼 잘못 알아들을 때가 많은 나 같은 사람은 웃지 못 할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지식이 짧거나 단순히 잘못 알아들어서 생긴 오류는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웃을 거리를 주는 데 그치겠지만, 의도적으로 잘못 읽어서 남을 깎아내리는 행태가 있다. 시기심으로 벌이기도 하고, 흔히 선거전에서 벌어져서 눈살을 찌푸리게도 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같은 당의 다른 후보 캠프에서 벌인 이런 행태는 정치인 출신의 작가가 “이런 난독증!”이라고 일갈할 만한 의도된 네거티브 전략이었다. 이런 전략은 성공을 거두기도 하지만, 오히려 역풍을 맞기도 쉽다.

우리나라는 세종대왕 덕택에 문맹률은 매우 낮지만, 문장의 내용을 이해하는 실질적인 문해율은 OECD 국가 중 하위권이라고 들었다. 그 이유는 선진국보다 턱없이 부족한 독서량 때문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스마트폰의 보급률이 높은 것도 한 가지 원인이라고 추측해 본다. 스마트폰을 갖게 된 후로는 전철에서 거의 책을 읽지 않게 되었고, 자연스레 독서량이 크게 떨어진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몇 해 전부터 인문학 열풍이 불면서 출판계가 다소 활기를 띠는 것 같았지만, 실상은 아닌 모양이다. 방대하고 심오한 인문학조차 수박 겉핥기식으로 나열한 자기계발서나 취업준비용으로 보이는 책들만 인기가 있고, 대표적인 인문학인 철학은 대학에서 점차 퇴출되고 있다.

퇴근길엔 서점에 들러야지 하면서 여전히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작가소개]

현재 Kim & Chang 법률사무소 근무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필집 ‘인터넷을 믿지 마세요’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