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것들

김상미

부드러운 것들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

씩씩하고 건강한 남자들보다는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남자들, 콧대가 높거나 영악한 여자들보다는 차분하고 부드러운 여자들이 우리를 기쁘게 한다. 건강한 남자를 싫어할 까닭은 없지만 커피숍이나 카페 같은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힘이 넘쳐 큰소리로 말하는 남자들을 보면 나는 슬프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남자고 여자고 목소리가 큰 편이다. 목소리뿐만 아니다. 성격도 거친 것 같고 성급하다. 기질이 그런지 모르지만 어쩌면 정서적인 문화의 영향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문화가 발전되지 않은 나라일수록 정서가 거칠다.

거칠다는 것은 ‘짐승스럽다’는 말과 통한다. 문화란 인간이 지니고 있는 짐승스런 요소를 순화하거나 승화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동물들에게는 문화 없고 오직 인간에게만 문화가 있다고 말한다면 너무 억지스러울까. 말하자면 인간에게만 문학, 그림, 음악 같은 정신적인 기쁨을 주는 가치들이 존재한다. 내가 강한 사람들보다 부드러운 사람들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 거리를 걷다보면 우리가 문명시대에 사는지 야만시대에 사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삶의 모습들이 너무 거칠고 척박하다. 거친 말, 거친 몸짓은 건강한 게 아리라 병든 상태를 위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자들이라고 해서 모두 부드러운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여자들이 더 거친 느낌을 준다. 상상에 그칠지 모르지만 원래 우리나라 여자들은 거칠었던 모양이다. 얼마나 여자들이 거칠었으면 조선시대에는 의상부터 욕망을 조이는 형대로 만들어 입지 않았던가. 그뿐인가 7거지악이라는 말도 안 되는 도덕규범을 만들어 자유를 구속했다. 물론 조선시대가 남성 중심의 시대라 남성 중심 이데올로기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여성들을 억압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여자는 부드럽고 남자는 거칠다는 사고가 하나의 허위라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여자들이 남자들 보다 더 거칠고 무섭다. 그 이유로 이런 말이 성립되는지 모르겠만 여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피를 본다. 피를 보는 사람들은 자연히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거칠어질지도 모른다. 전쟁터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전우를 보는 순간에 군인들이 거칠어지는 것이나 비슷한 이치 아닐까.

양성평등의 시대가 되면서 여자들이 더 거칠어 졌다. 겉으로는 나약해 보이고 섬세해 보이지만 어쩌면 그것은 거친 욕망을 은폐한 포즈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령 메니큐어를 발라 단단하게 만든 손톱과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하이힐은 장식 같지만 마음만 먹으면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다.

여자들의 무의식 속에는 남을 찌르려는 생각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나는 독한 마음을 아름다운 겉모습으로 포장하는 여자들보다 거짓말을 잘 하는 여자들이 더 거칠다고 생각한다. 남자들 앞에서 교양 있는 척 얌전을 떨다가 남자들이 나가면 목소리가 높아지고 거친 말을 하는 여자들은 부드러움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우리가 문화를 여성적이라고 말하는데 그 속에는 섬세한 부드러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거친 여자들이 세상을 이끌고 가는 이 시대에 문화란 존재하는 것일까. 문화란 가면을 쓴 거친 여자들은 부드러움의 힘을 모를지도 모른다. 거친 욕망을 은폐하는 기술만 연마하여 영악하고 현실적이다. 겉으로는 낭만적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그 속에는 짐승들이 들어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여성상위시대에 우유부단한 남자들을 데리고 살려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피곤하고 우울하고 괴로울 때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거칠고 뻔뻔함이 아니라 부드러움의 힘이 필요하다. 법정 스님의 글 중 산에서 사는 사람들의 지혜에 대한 내용이 떠오른다. ‘겨울 밤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 않던 나무들이 눈이 내려 덮이면 꺾이게 된다’고 하였다. 가지 끝에 사뿐사뿐 내려앉는 가벼운 눈발이 나뭇가지를 꺾고 만다는 결코 부드러움이 약하지 않다는 말이다.

부드러움이 주는 것은 힘이고 보이지 않는 기쁨이다. 이따금 거칠어질 때가 많은 나도 부드러움의 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작가소개]

‘현대수필’ 등단.

박재삼문학상 수상

‘발자국은 기억을 만든다’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