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다리기

박향연

오늘도 우리의 겨루기는 시작되었다.

“신부 화장하고 어디 가니?”

“비꼬지 좀 마세요. 요즘 이 정도는 화장하는 것도 아니라고!”

쾅 하고 문을 닫고 나가버린다. 딸아이의 이런 태도가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르고 가슴에는 기차 화통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하다. 아무리 사춘기라고 해도 너무하다. 나는 호흡 한번 가다듬으며 화를 잠재워본다. 째깍째깍 시계는 출근 시간을 알리는데 딸과의 언쟁으로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머리는 어떻게 만져야 좋을지 모르겠다.

버스 안은 출근하는 사람들과 등교하는 학생들로 인산인해다. 사람들 사이로 짙은 화장을 한 여학생이 시야에 들어왔다. 진하고 서투른 화장에 교복을 입은 어색함이 딸과 다른 바가 없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모양새다. 긴 머리, 파마머리, 염색한 머리 등 10대에게 어울리는 머리 모양이 맞기나 한 건지 도무지 이해를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었다. 교복을 입긴 했는데 학생들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혀를 차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기억 저편 아스라이 잠자고 있던 나의 여고시절이 떠올랐다. 귀밑 1cm 일자 단발머리와 하얀 옷깃의 주름진 까만 교복이 깔끔하고 단정했다. 발목까지 내려올 정도 길이의 치마는 걸을 때마다 성가시게 거치적거리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성장기라 3년을 입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고 물려 줘야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시절에도 튀고 싶은 학생들은 옷핀으로 치맛단을 접어 올려 미니스커트로 개조하기도 하고 깻잎 모양과 흡사한 앞머리를 만들어 오기도 했다. 과산화수소수로 머리 색깔을 바꾸어오는 대범한 친구들도 종종 있었다. 걸을 때마다 먼지를 일으키는 넓은 밑단의 체육복은 댕강 잘라 종아리를 드러내는 것이 멋으로 알고 한쪽 다리를 떨어대는 모습은 흡사 옆집 강아지 워리와 닮아있었다. 사춘기의 반란은 시도 때도 없었다. 예고 없는 생활지도부 선생님의 용모 검사가 시작되는 날이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곤 했었다.

버스에 탄 학생들을 보면서 외모에 관심 많은 사춘기라고 눈 감아 줘야 할지 단정한 용모가 학생답다고 충고해 줘야 할지 복잡한 심경이었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난 후에 돌아보면 이런 것도 한때의 추억이라고 결론지으며 버스에서 내렸다. 어느덧 숨 막히던 더위도 가시고 깨끗하고 높아 보이는 하늘은 분명 가을이 가까이 왔다. 아침저녁으로 변하는 요즘 날씨만큼이나 세상도 빠르게 돌아간다. 나의 생각이 세상과 엇박자를 달리고 있는 건 아닌지, 씁쓸한 생각은 들지만, 딸아이의 입장을 이해해주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오늘은 인정할 수 없는 개운 하지 않은 딸아이의 1승이다.

자다 깨기를 반복하며 불면에 시달리다가 아침을 맞은 볼품없는 모양새가 가관이다. 남편 출근하고 딸아이 등교 시키고 밥 한술 뜨는데 입이 까끌까끌하다. 유산균 음료로 입을 헹구며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아침 운동에 나섰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하는 감정과 늘어나는 뱃살을 고운 시선으로 볼 수 없던 터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싸한 공기에 실려 오는 풀냄새가 상큼하다. 걷다 뛰가를 반복하다가 숨이 차면 앉아서 쉬기도 했다. 제비꽃을 닮은 키 작은 야생화에 마음을 빼앗겨 행복한 미소를 머금다가도 불현듯 이유 없는 우울감이 엄습해오기도 한다. 이런 나의 기분을 아는 듯 샤워기의 물줄기는 시원하고 경쾌한 소리를 내며 땀에 젖은 몸을 씻겨준다. 운동을 끝내고 제일 먼저 하는 나의 행동은 인터넷 뉴스를 훑어보는 것이다. 삐~이, 컴퓨터 접속이 됐다는 신호음이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를 좌우명으로 가슴속에 새기며 산다. 언행일치가 안 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노력하고 있다. 나의 이런 생각에 찬물을 끼얹는 어제 그 화장한 딸, 우리 집 학생의 관심사는 연예인을 닮은 이성 친구와 외모 치장이다. 공부는 자기랑 맞지 않고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라며 이치에 맞지도 않는 논리를 또박또박 뱉어낸다. 책과는 담을 쌓았다. 장래 희망도 없단다. 이런 아이와 대화는 나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오! 신이시여 어찌하오리까?” 그래도 나는 이런 딸에게 최대한 부드러운 말투로 부탁을 할 수밖에 없다. 컴퓨터 장님이니까. “첨부파일은 어떻게 하는 거니? 밑줄은 어떻게 삭제하고? 파일 저장은 어떻게 하니?” 묻고 또 묻고 반복하기를 여러 번, 말귀를 못 알아듣는 다느니, 작가 할 수 있겠느냐며 자존심에 상처를 준다. 고함 섞인 목소리는 기어이 담장을 넘어간다. 정말 자존심이 상했다. 엄마와 딸의 위치가 바뀐 건지 나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내며 나무라는 듯 조롱하는 것 같은 태도에 나의 감정은 극도로 흥분 상태가 된다. 예의 없고 친절하지 못하다고 태도만 지적하며 어른의 특권을 남용하고 있었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나는 비겁한 변명을 한 보따리나 늘어놓고서는 컴퓨터 작업을 접어버렸다. 딸은 억울하다며 울분을 토하고 있었고 한심한 나는 큰딸의 혼잣말을 듣고 말았다. ‘둘이 너무 똑같아.’

다른 듯 닮아 있는 우리의 겨루기는 무승부인가? 유치한 말싸움에서 기선을 제압한 나는 승리를 확신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갱년기 대 사춘기의 줄다리기는 언제쯤 끝날 것인가? 오로지 텔레비전만 뚫어져라 우리의 줄다리기엔 관심도 없이 낄낄거리며 우걱우걱 과자를 두 봉지째 먹어 치우는 남편은 진정 인간 곰 인가? 방관자인가?

[작가소개]

이야기가 있는 문학풍경 회원

아모레 카운슬러

학습지 지도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