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피첩(霞帔帖) - 자녀에게2

이 의

6월 초승, 따끔한 햇살이 초행길을 팍팍하게 조여와 젖 먹던 힘까지 내야했다. 국립민속박물관을 찾아드니 국제공항이 아닌가 싶도록 외국어가 시끌벅적 활력이 넘쳐흘렀다. 경복궁을 거쳐 온 관광객들이 북적이는걸 보니 머리가 밝아지고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듯싶었다. 지난날의 우리선인들의 생활관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와 지난날을 둘러보는 듯 친근한 이웃 같다.

역사의 소양이 부족하다보니 메일에 올라온 하피첩이 생소하여 검색창을 두드렸다. 노을빛 치마로 만든 소책자이기에 <하피첩>이라 일렀으리라고 해설하고 있었다. 다산다운 제호이다. 부인 홍혜완이 다산의 귀양 10년째 되는 해, 시집 올 때 입었던 6폭치마를 남편에게 보냈다. 남편에게 하피를 보내는 그 마음속을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으리. 귀양지에서 종이가 귀한 다산은 노을빛으로 변색된 비단이 서첩으로 만들기에 꼭 알맞다고 하피첩 서문에 적고 있다. 치마 네 폭으로 4권의 소책자를 만들어 두 아들 학연, 학유에게 경계하는 말을 적은 책자이다. 그중 한권은 행방이 모연하고 세권만 전해온다.

아담한 전시실로 들어서자 다른 곳과 달리 관람자가 없다. 심호흡을 하고 앞을 바라보니 <하피첩>이 클로즈업되어 홀연히 등장하는 듯싶다. 소설 목민심서에 그려진 귀양지인 강진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흐르는 건 다산을 그리워하는 마음인가. 다산의 관련 유물 30여점이 200여년의 시공을 뛰어 넘은 노고인양 빛바랜 누런 얼룩이 말을 건네 온다. 18년이라는 긴 세월을 유배처에서 공허와 회의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많은 저서를 냈다. 이 서첩도 그 시공간에서 태어난 글 중 하나로 하피첩의 스토리에 눈시울이 촉촉해 왔다. 그 무수한 시간들을 정조와 더불어 나라와 백성을 위한 창조적인 일을 했더라면, 우리나라의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 듯 스쳤다.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수원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정약용의 뛰어난 과학적인 축성 솜씨를 보며 다산의 천재성에 탄복을 할뿐이다. 우리의 선현 중에는 훌륭하신 분이 많지만 다산만큼 다재다능한 분도 없는 듯싶다. 얼마 전 까지도 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솜틀도 정약용이 만들었다고 한다. 이를 행랑채에 살던 목공 일을 하는 양민을 통해 전파했다니 현대판 맥가이버는 저리가라다.

아들과 후손들은 하피첩에 담긴 삶의 가치관을 실천하며 살았다고 한다. 또한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실용적인 학문을 연구하며 그 뜻에 도달하고자 노력했다. 남은 치마폭으로 매화와 새를 그린 족자를 만들어 시집간 딸에게도 보냈다.

다산은 자녀에게 “부지런(勤)함과 검소(儉)함 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 나은 것이니 한평생 써도 닳지 않을 것이다.”라고 일렀다고 한다. 농경사회에 이보다 좋은 경구가 있을까?

하피첩 서문 말미에 ‘가경 경오년(1810) 초가을 다산의 동암에서 쓰다.’로 부터 200여년이 흐른 2006. 4. 2일 KBS 진품명품시간에 하피첩이 세상에 존재를 드러냈다. 다산의 7대 종손이 6,25피난길에도 하피첩을 품고 다니다 수원역 근처에서 잃어버렸다. 세월은 흘러 2005년 수원 변두리 모텔 주인이 파지를 마당에 내 놓다가 폐품 수집 할머니의 수레에 얹혀 있던 고서와 바꿨다고 한다. 만약 하피첩이 종이로 되었어도 그 주인은 바꿀 생각을 했을까? 김영복 감정위원은 책을 본 순간 “덜덜 떨렸다.”고 말한다. 아마도 전쟁의 신 치우천황(배달국 14대 왕)과 맞닥뜨린 것보다 더 놀라지 않았을까? 문서에만 전해오던 진품명품이 나타났으니.

하피첩의 내용은 두 아들에게 교훈이 될 당부의 말을 적고 있다.

1첩에는 부모와 자식, 형제간 화목하기를 당부했고.

2첩에는 자아확립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닦으며 근검하게 살 것을 일렀다.

3첩에는 학문과 처세술의 내용으로, 너희가 온 마음을 기울여 내 글을 연구하여 그 깊은 뜻에 통달할 것을 바랐으며 또한 베푸는 삶과 처세술에 대하여 적고 있다. 이는 인터넷에서 본 것을 내 나름대로 옮겨봤다.

어머니 비단치마에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을 담아 쓴 당부의 말씀, 이 세상에 이보다 더 귀한 보배가 있을까. 하피첩이 세상에 알려지던 명품진품에서는 감정가가 1억 원이었다. 10년이 지나 이 보물은 2015년 서울 옥션 경매에서 7억 5천만 원에 국립민속박물관의 소유가 되었다.

정약용은 천주교인이라는 죄명으로 당쟁의 희생제물이 되어 전남 강진으로 귀양을 갔다. 임금 정조는 사랑하고 아끼는 인재를 전제군주의 권력으로도 어쩌지 못하고 귀양 보낼 수밖에 없는 심정은 어떠했을까? 이렇게 당쟁은 많은 인재를 당리당략으로 기량을 펴보지도 못하고 유배자로 은둔자로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지금도 국회는 국민을 위한 활동은 뒷전이고 여전히 여야는 정쟁만 일삼고 있으니 무슨 뾰족한 방법은 없는 걸까? 다산은 장장 18년이라는 긴 세월의 유배생활을 어찌 견뎠을까? 귀양살이 온 정약용은 큰 스승을 그리워하는 그곳의 젊은이들의 스승이 되었고 많은 저서와 하피첩이라는 귀한 보물을 후대에 남겼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는 평범한 말을 되뇌어본다.

노을빛 예복 치마에 올올이 아로새겨진 그리움이 담긴 가족의 사랑 이야기가 2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들의 마음을 애잔하게 한다.

*하피 : 6폭 붉은 비단 치마로 결혼 예복을 일컬으며, 조선시대에는 비, 빈이 입었다

약력

‘대한문학’ 등단

전북문인협회 회원

저서 ‘여자나이 마흔 둘 마흔 셋’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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