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덕(德)

전종문

대체로 사람들은 어둠을 싫어한다. 심지어 어둠을 나쁘게 여기기까지 한다. 어둠이 지닌 상징성은 그런 생각을 더욱 부채질한다. 그러나 어디 그런가. 어둠이 죽음, 죄악, 불안, 마귀 따위를 상징케 하는 것은 그렇게 끌고 가는 사람들 탓이다. 어둠은 결코 죄악도 아니고 음흉한 것도 아니다. 어둠은 오히려 예절이 밝다. 덕을 지니고 있다.

어둠은 물러설 때를 안다. 보라, 어둠이 빛이 들어올 때 물러가기를 거부한 적이 있는가. 빛이 들어오면 슬며시 그 자리를 뜬다. 반항도 하지 않고 더구나 떠나기 싫다고 앙탈을 부리지 않는다. 미련 남기지 않고 스스로 물러난다. 양보의 미덕이다.

모름지기 사람은 진퇴를 잘 해야 한다. 나가야 할 때 지체하지 말고, 들어와야 할 때 머뭇거리지 말아야 한다. 무엇에 연연하여 조금만 더 머물다 가자고 버티다가 기회를 놓치고 부끄러움을 당한 사람이 어디 한, 둘이던가. 들어서기를 주저하다가 영원히 기회를 놓친 사람도 많다.

사람들은 왜 어둠을 죄악으로 상징하는가. 어둠 속에서 일어나는 부도덕한 일은 어둠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어둠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음흉한 마음 때문이다. 어둠은 덮어주고 감싸주고 감추어 주는 일을 한다. 세상에는 감추어서는 안 되는 일이 분명히 있지만 드러내서는 덕스럽지 않은 일도 있다. 모든 것이 낱낱이 다 드러난 세상을 상상해 보라. 모두가 공개되고 비밀이라곤 없는 세상은 기실 삭막하고 건조한 것이다. 우리 사회가 폭로하고 까발리는 것이 능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대체로 투명한 것이 좋지만 누구에게나 은밀하게 감추어둔 비밀이란 게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그 사람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그래서 남의 약점이나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 미덕이고 감추어 주는 것이 배려인 경우가 많다. 실로 아름다움이란 모두가 다 드러난 것이 아니라 적당히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보다 옷으로 적당히 감추어진 모습이 아름답다. 그게 부끄럽지 않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두우면 불안해 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사위가 캄캄하다고 두려워하고 불안해 할 이유는 없다. 어둠이 조용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덕스러움을 생각해야 한다. 낮 동안 시끄러운 세상에서 살다가 어둠과 함께 찾아온 밤에, 그 소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그 고요 속에서 포근한 이불을 덮고 잠을 잔다는 것은 축복이다. 영혼도, 육신도 시끄러운 곳에서 보다는 고요한 곳에서 쉬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밤은 밤대로 내버려 두어야 한다. 어둠은 어둠대로 놓아두고, 고요는 고요한대로 내버려 두어야 한다. 불을 켜 대낮처럼 밝혀 놓으면 비겁한 사람들의 부정한 행위를 방지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하늘의 별을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 우리에게 달빛의 그윽함을 잃게 한다는 것은 정서상 매우 큰 손실이다.

또한 밤중에도 볼륨을 높여서 주변을 시끄럽게 한다면 그것은 고요를 원하는 영혼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다. 고요 속에서 들려오던 풀벌레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은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일 것이다.

나는 지금도 고향을 생각하면 밤중에 고요를 깨뜨리며 들려오던 컹컹 개 짖는 소리가 정겹게 떠오른다. 그때 우리에게 무논에서 들려오던 개구리 울음소리, 숲에서 들려오던 부엉이 울음이 얼마나 마음을 편안하게 했던가. 문득 그리움에 빠져들게 만들곤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밤의 고요와 어둠에는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유익함이 있다.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얼마나 자신을 잊어버리고 사는가. 자신의 은밀한 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 자기 실종현상이다.

자신에 대한 진지한 사색도 없는 사람이 과연 타인이나 세상에 대하여 얼마나 정확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겠는가.

밤은 덕을 지녔다. 그가 가지고 있는 어둠과 고요는 사람이 지녀야 할 기본 성품에 혜택을 주고 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밤에는 불을 끄자. 밤이 대낮같이 밝다고 자랑하지 말고 밤에게 어둠과 고요를 돌려주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밤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고, 그 의무는 우리가 자연에게 드리는 예절이기도 하다.

약력

시인,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저서 ‘선택은 더 많은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