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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먼 당신
박순희
인간은 누군가와 끊임없이 관계하며 살아간다.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모둠살이 속성과 관계 속에 살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인류는 시대에 따라, 살아가는 양상에 따라 문화를 생성하고 소멸하면서 역사를 이어왔다.
심리학자 매슬로우의 “요구 위계설‘에 의하면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가 해결되면 그 위단계로 소속의 욕구가 있다 누군가와 함께 어울리고 싶어 하고 친해지고 싶어 한다. 누군가와 친해지기 위해선 나와 공통점을 찾아보면서 공감대를 형성해 보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공감대가 형성되며 저절로 친해진다. 친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거리감이 없다는 뜻이다. 공유하는 것이 많고 생각이 같고 서로가 감출 것이 없이 진실하면 저절로 친해진다. 겉으로는 친한 것 같이 수십 년이 지나도 속내를 털어놓지 않으면 친해 질수가 없다. 그에 대해 아는바가 없다면 어찌 친하다 할 것인가.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그가 지금 무얼 하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날마다 만나고도 헤어져 돌아오면 하루에도 몇 번씩 통화하고 또 보고 싶어지고 아! 그런 사랑을 나누던 시절이 있었던가 싶게 까마득하다.
인간의 관계에서 서로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 거리감이다. 관계는 유유상종하며 형성된다. 먹을 가까이하면 저절로 검어질 것이요. 붉은 것을 가깝게 하면 저절로 붉게 물든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하고 내가 좋은 친구가 되어주어야 할 이유다.
거리감을 연구한 자료가 자못 흥미롭다. 가장 친밀한 관계는 15센티미터 이내에 있어 손을 잡을 수 있고 신체접촉을 할 수 있는 거리다. 연인관계가 아닌 이성이 개인적 거리인 45센치 이내에 있으면 부적절한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종종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과 지하철이나 만원버스 안에서 불가피 하게 상대방의 모공과 실핏줄까지 관찰하게 될 만큼 ‘친밀한 거리’를 유지하게 될 때가 많다. 사회적 거리는 120 센티미터 이상 두 손을 뻗어야 닿는 신체적 지배의 한계범위다. 일반적으로 210센티 정도의 거리에서 비개인적 업무가 행해지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보통 취하는 거리에 속한다. 그러나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표면적으로 나타나 보이는 물리적 거리는 다가가면 금방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지만 마음이 통하지 않는 심리적 거리에는 메울 수 없는 구렁이 있다. 아무리 사랑하고 친밀하고 싶어도 이 거리밖에 있는 그대라면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고 만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약간의 거리를 두어야 그 관계가 오래간다. 격의 없는 관계라 해도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걸 체험으로 터득하게 된다. 너무 친해서 허물없이 지내다가 탈이 나고 만다. 진정한 친구라면 그에 대한 허물을 알아도 모른 척 눈감아 주고 덮어주어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그의 허물을 진심으로 충고해주고 남에게 욕먹지 않도록 바로 잡아 주어야한다. 귀에 달콤한 말은 하기 쉬워도 입에 쓴말은 하기 어려운 것을 알고 충고를 잘 받아들이고 고칠 줄 알아야 진정한 친구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뻔히 아는 이치지만 ‘잘 한다’ ‘좋다’ 소리 듣기는 좋아도 ‘잘못 한다’ 말 들으면 기분이 상한 것이 인지상정이라 충고하기도 어렵고 싫은 소리도 못한다. 입바른 소리 잘 한 사람한테는 다가가는 사람도 드물다.
이래저래 사람 관계처럼 어려운 것도 없다. 너무 소심하게 생각하면 어려울 뿐이니 물 흘러가듯 마음 통한대로 사는 것이 인간마다의 진면목이다. 서로 뜻 맞는 사람끼리 친하고 동병상련하며 정이 깊어간다. 친하고 싶은 사람에게 흉금을 열지 않으면 지척이 삼만 리라고 그야말로 너무 먼 당신이 된다.
[사진설명]
2004년 등단
저서 ‘꽃으로 말한다’ 외
수상 행촌수필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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