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명 왕

양 정 숙

어머니의 재봉틀을 쓰다듬어 본다. 고단함이 나에게 전해지는 것 같다. 잠결에도 돌돌돌 돌아가던 재봉틀 소리도 들려오는 듯하다. 이는 어머니가 생전에 제산목록 1호로 여기던 물건이다. 어머니는 조각천을 주어모아 이 재봉틀로 우리들에게 색동저고리를 수없이 해주었다. 동생과 나는 색동저고리는 그만 입겠다고 떼를 썼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일제 강점기, 딸만 여덟을 둔 외할아버지는 기골이 장대한 열아홉 살 총각에 호감이 갔더란다. 형편은 조금 어려워도 성실해 보이니 딸은 굶기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게다가 성씨가 괜찮으니 후손은 좋을 것 같았단다.

어머니의 나이 열여덟에 육남매의 장남인 아버지한테 시집을 와서 보니 가난이 상상을 초월했다. 끼니때마다 밥을 담고 나면 늘 자신의 몫은 챙길 수조차 없었다. 먹을거리뿐만 아니라 입을 것도 마찬가지였다. 겨울이면 옷을 세탁할 때 발가벗은 시동생들을 자신의 이불 속에 넣어 놓고 옷이 마르기를 기다렸다. 새색시는 농지기인 자신의 옷을 시동생들 것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몇 년을 살다보니 도저히 끝이 보일 것 같지 않았다. 궁리 끝에 하루는 시아버지에게 제의를 했다. 재봉틀을 사 주면 삯바느질도 하고 가족들도 헐벗지 않게 하겠다고. 시아버지는 며느리 청을 들어주면 살림이 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값진 물건을 구입할 돈이 어디 있었겠는가. 궁리 끝에 이웃마을에 사는 친구를 찾아가 사정을 얘기했더니 흔쾌히 들어주었다. 시아버지는 며느리에게 물었다. 재봉틀을 마련해주면 네가 벌어서 그 빚을 갚을 수 있겠느냐고. 며느리는 욕심에 얼른 대답을 했다. 당시 동네는 백여 호가 넘는 큰 마을이었으나 그걸 가진 집은 한 집도 없었던 때였다.

빌린 돈을 허리춤에 차고 한양으로 천리 길을 나선 사람도 시아버지였다.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그야말로 먼 여행길이었다. 전라도 벽지에서 서울이란 거리는 일을 빨리 마친다 해도 왕복 나흘은 잡아야 했다. 그 시절은 동네에 뉴스가 있으면 이장이 높은 당산 나무에 올라가 큰 소리로 확성기처럼 외치는 것이 통례였다. ‘누구 집 초상이 났습니다. 아무개네 집에서 돼지를 잡으니 필요한 분은 어디로 모이십시오.’ 등등. 사십대 초반의 시아버지가 서울에서 짊어지고 온 재봉틀은 단연 새로운 구경거리였다. “백동댁네가 서울에서 재봉틀을 사왔습니다. 구경하고 싶은 분들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모이십시오.” 이장이 외치는 소리는 온 동네에 소낙비처럼 쏟아졌다.

마당에는 멍석이 깔렸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이 빙 둘러앉았다. 판도라 상자 같은 비밀스런 물건을 가운데 놓고서. 스물두 살 며느리는 기계를 맞추어야했다. 박스를 풀고 부품 하나하나를 널어놓고 제 자리를 찾아 끼워넣기 시작했다. 다 됐다 싶어 발판을 눌러 돌리자……, 그때의 후련함이라니. 구경꾼들은 마치 무슨 경기에서 승리나 한 선수 대하듯 박수로 환호했다. ‘며느리가 복덩이다. 신식 며느리가 들어와서 이 집은 이제 일어나겠다.’ 등의 찬사들이 오갔다고 한다. 어머니가 노인이 된 뒤에, 그 때를 회상하며 무척 떨렸다고 기억해 냈다. 만약 조립에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했다. 처녀 적 옆집 친구네 것을 사용은 해 봤지만 분해된 것을 직접 맞춰 본 일은 없어서였다.

재봉틀을 구경 시킨 일은 뜻하지 않게 사업 홍보로 들어갔다. 손바느질로 하루 종일 꿰매 봐도 바지 하나를 마무리 지을까 말까하는 세상인데 신식 기계가 들어와 순식간에 옷 하나씩이 완성 되었다. 더구나 기계 바느질은 때깔도 좋고 실용적이었다. 어머니의 솜씨가 날로 좋아지면서 일감도 밀리기 시작했다. 바느질감의 좋고 나쁨도, 옷의 남녀노소도 가리지 않았다. 돈을 마련하기가 어려운 집은 자투리 베로도 받고, 김을 매는 품이나 곡식으로도 받고, 그도 안 되는 집에서는 다른 일로도 때웠다. 그래도 단연 최고의 기분은 현금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고 했다.

남녀노소 한복만 착용하던 시절에 어머니는 하이패션을 창출해 냈다. 주머니가 달린 남성용 조끼를 해 놓으니 인기 폭발이었다. 한복 저고리는 담배쌈지도, 돈지갑도 넣을 곳이 마땅찮았는데 주머니를 여럿 붙여 놓으니 마치 가방을 지니고 다니는 것처럼 편리해서 너도 나도 조끼를 해 달라는 주문이 폭주해 어머니는 밤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 대가로 서랍에는 항상 돈이 쌓여 있었다. 그것이 기반이 되어 논밭을 사들이는데 보탬이 되었고, 우리 형제들이 학교교육을 받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어머니의 기술은 이웃 동네에도 소문이 나서 밀려드는 일감에 밤을 꼬박 새는 일이 허다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피곤한 줄도 몰랐다고 했다. 이렇게 어머니의 사업은 날로 번창해 갔다.

몇 년 전 고향에 들른 일이 있다. 내가 아버지의 함자를 대며 딸이라 하자 그분은 내 손을 덥석 잡으며 어린 시절 자신이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얘기를 꺼냈다. 자신이 최초로 입어본 양복은 일제 소학교 시절에 내 어머니가 재봉틀로 지어준 것이었고, 혼자만이 입고 다니는 양복은 부러움의 대상이어서 동무들 앞에서 으시댈 수 있었다고.

‘어머니, 먹을 것이 없어 빈 솥을 긁어대던 어린 시동생들을 바라보면서 그런 용기를 냈습니까. 옷을 깨끗이 차려 입고 출입하는 선비 시아버지가 자랑스러웠습니까. 어머니는 남다른 피가 흐르고 있었던가 봅니다. 일본 순사들이 입고 다니는 양복을 곁눈질로 보고 스스로 연구해 온 동네에 복식 혁명을 일으키신 어머님. 어머니는 어려움 속에도 굴하지 않고 많은 치적을 올린 분입니다. 바느질뿐만 아니라 밤나무 껍질을 삶아 천연 염색한 실을 씨줄과 날줄로 배열해 커피색 바둑판무늬가 진 베도 발명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와서 생각하니 요즘 같으면 발명왕이라는 상이라도 타서 떼돈을 벌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전쟁 때는 자주 출몰하던 빨치산의 눈을 피해 밤만 되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마당 귀퉁이에 서 있는 감나무위로 피신 시켰던 재봉틀을 남기고, 8년 전 어머니는 아들의 무릎에서 이승을 하직했다. 오랜 만에 어머니의 재봉틀과 마주하니 오늘따라 어머니가 무척 그립다. 꿈에서라도 한 번 만나보고 싶은 나의 어머니가. (끝)

전북 부안 출생

조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현, 광주교육대학 대학원(석사과정) 재학 중.

수상: 무등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2016)

광주 전남 아동문학인회 우수상(동시 2011)

여수 해양문학상(소설 2010)

대한 문학상(수필부문 2004)

1995년 1월 월간 수필과 비평(수필) 신인상

저서: 그림 동화 『새롬 음악회』(2014)

수필집『엄마, 이 세상 살기가 왜 이렇게 재밌당가』(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