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평대군(廣平大君) 묘역

김용림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8호인 이곳 궁촌별묘면적은 13만평이다. 이 안에 무안대군, 광평대군, 영순군 묘소를 비롯하여 700여기의 묘가 있다. 입구에 정묘, 숭모재, 내삼문, 외삼문, 종회당, 그리고 종가가 있다.

광평대군의 19대 종손인 이규명씨는 훼손방지를 위해 그동안 문을 굳게 닫혀두었으나 특별히 오늘 강남문화해설사 교육생들을 위해 문을 활짝 열어주셨다.

강남에 이렇게 아름다운 소나무 숲이 있다는 것은 기적이다. 바로 이웃에 삼성의료원이 있는데 이 소나무 숲의 피톤치드는 환자들에게 매우 쾌적한 환경이 될 것 같다.

광평대군은 세종의 다섯째아들로 1436년에 신자수(申自守)의 딸과 혼인하였고 이듬해에는 무안대군 방번에 입양되어 후사가 되었다.

광평대군은 성균관에 입학하여 효경·소학·사서삼경·좌전 등에 능통했고, 서예와 격구에도 능하였다. 책을 좋아했고 음악, 수학을 잘해 세종을 제일 많이 닮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약관의 나이(20세)에 죽어 세종이 지금의 선릉부근에 무덤을 조성했으나 성종이 이곳에 들어오면서 지금의 대모산자락인 수서동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여기에 일화가 있다.

세종이 변복을 하고 자신이 왕이란 걸 숨기고 점을 봤다. 다섯째아들 사주를 넣었더니 굶어죽을 팔자라고 해서 아무렴, 왕의 아들이 굶어 죽을 이유가 있나, 미신이다 하면서도 왕은 은근히 걱정이 되어 자손 만대 먹고 살 대 농지를 하사했다. 그런데 준치를 먹다가 목에 가시가 걸려 며칠을 굶다가 아들(후에 영순군)하나를 남기고 죽었다. 그래서 준치, 갈치 등 치,자가 들어간 생선은 대대로 제사상에 절대 놓지 않는다고 한다.

한편으론 창진(홍역)을 앓다가 죽었다고도 전하지만 세종이 다른 자식들보다 유독 재산을 많이 준 걸 보면 전자가 맞을 듯 하다.

아버지인 세종보다 먼저 죽었지만, 그 아들 영순군 이후로 자손이 번성하여 이씨 왕족 중에서도 후손이 많기로 유명하다.

아들 영순군은 태어난지 6개월 만에 아버지를 여의니, 세종임금은 유모를 구하여 궁중안에서 기르게 하는 한편, 홀로 사는 양모 방번 부인 왕씨 등을 함께 붙여주어 궁중 안에서 5세가 되도록 귀하게 키웠다. 명이 길라고 아명을 수복이라 지어주었다. 그러나 영순군 역시 명이 짧아 27세에 죽고 그 아내 최씨는 시어머니 신씨와 함께 뒷산 견성암(지금의 봉은사)에서 비구니로 일생을 살았다. 광평대군이나 방번은 성종 때 이곳에 이장되었으니까 이곳 광평대군 묘역에 제일 먼저 들어앉은 분이기도 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광평대군은 일찍 죽었기에 수양대군에 의해서 안평대군·금성대군이 비명에 갈 때 화를 면할 수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영순군 이후 그 후손은 크게 번성하였으니 다행이다.

세종대왕이 자신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으로 하여금 봉사사(奉祀事)를 명하여 입묘봉사를 받들도록 한 무안대군(방번)도 이곳 광평대군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조선 태조의 일곱째아들이며 신덕왕후 강씨의 소생이다.

1392년 조선의 개창으로 무안군에 책봉되어 의홍친군위절제사·의홍삼군부좌군절제사를 지내며 태조(아버지)를 보좌하였다. 처음에 세자로 책봉될 예정이었으나 배극렴, 조준, 정도전 등이 방번은 “성격이 광망하고 경솔하다”라고 반대하여 세자위가 동모제(同母弟) 방석에게 넘어갔고, 1398년 방원이 주동한 1차 왕자의 난 때 18세로 피살되었다.

세종대왕 5남 광평대군과 태조 7번째 왕자 방번의 묘소가 있는 이곳 궁마을은 중국에도 없고, 일본에도 없고, 미국에도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궁촌별묘(음택문화 유산)이다. 그런데 서울시에서 이 앞쪽에다가 고층아파트 단지를 짓고 있으니 종손인 이규명씨는 걱정이 태산이다. 신라천년 경주 김유신장군의 묘소 앞에 아파트를 짓다가 천년된 소나무 단지가 한순간 홀라당 불타 없어져 버린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후손을 위해 ‘대모산생태문화공원’을 만들자는 운동을 오랫동안 벌리며 매우 분주한 나날을 보냈지만 지금 아파트는 끊임없이 지어지고 있다. 결국 이란투석 이었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수서역 1번 출구에서 일원역 방향으로 150미터정도 가면 ‘필경재’란 우리나라 전통한옥이 있다. 성종 때 건립되어 500여년 역사의 사대부 전통가옥으로 광평대군의 종손인 이천수(세종대왕의 증손)가 99칸으로 건립, 19대를 살아온 전통구조물 제1호이다. 지금은 많이 유실되고 안채와 사랑채만 남아 정통 궁중 요리 전문점으로 운영하고 있다.

"필경재"는 반드시 웃어른을 공경할 줄 아는 자세를 지니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필경재에 들어서면 그윽한 풍경 소리가 손님을 맞으며 우거진 숲과 정원이 아늑하다. 화려했던 장동(壯洞)의 안동김씨 저택들도 다 없어지고, 팔판동(八判洞)의 판서댁도 남아있는 것이 없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500년 고택을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는 곳은 오직 수서동의 필경재 고택뿐이다. 이 고택에서는 17세손 이병무씨가 대궐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고풍스런 궁중음식의 식당을 운영하고 있어 외국계 다국적 회사의 지사에서 본사 손님을 대접하는 장소로 외국 주요귀빈들이 많이 드나든다.

후손 이후원이 살고 있던 당시 이 집 사랑채에서 인조반정의 거사계획이 이루어졌다하니 인조반정의 산실이 아닌가. 벌써 얼마의 세월이 지났나, 저 소나무는 보았을까 들었을까.

우리는 마치 조선시대 안으로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정안부정공 이천수의 종갓집으로 이 고택안에서 숙종때 이유, 효종때 이후원, 헌종때 이지연, 이 3명은 3정승을 지냈다. 또 순종때 장원급제하여 도승지를 지낸 이윤종을 비롯 15명의 종손들이 모두 과거급제를 하는 수많은 공신이 이 가옥에서 태어났다. 이 밖에 이범석, 이준, 이상설, 이위종도 직계후손이다. 일제 때는 이곳을 우리 민족혼을 심어주기 위해 설립한 중앙고 광주(廣州)분교로도 사용했다.

필경재, 여기서는 대궐에서만 맛볼 수 있었다는 두텁떡과 20여 가지 재료를 넣어 만든 궁중 신선로, 형형색색의 구절판, 그리고 너비아니 등 대표적인 궁중음식으로 왕 대접을 받으며 식사한다.

오래 전 TV시청률 1위였던 주말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안사돈끼리 필경재에서 밥을 먹고 김혜자가 44만원을 지불하고 집에 와서 펑펑 운다. 두 명이 먹으나 네 명이 먹으나 밥값은 똑같고 거기에 세금과 봉사료가 각각 10퍼센트씩 붙었던 것이다. 그렇게 고급 식당으로 데리고 간 장미희를 원망한다. “세상에 한 끼 식사가 그렇게 비싸다니” 하며 억울하고 분해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 * 수필·소설가* 강남문인협회 부회장 역임* 강남문화원 운영위원* 강남대모문학회장* 저서: 수필집『내마음의 비상홀』『너와내가 부른노래』 소설집『너의 그림자』『극락강무지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