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3년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의 신진 작가 프로젝트 ‘봄 작가, 겨울 무대’에서 무대공연작으로 초연된 연극 〈서재 결혼 시키기〉가 2025년 공연예술 창작산실 2차 제작지원 선정작으로 다시 무대에 올랐다. 12월 13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개막한 이번 재공연은 자살 사별자의 시간을 밀도 높은 대사와 네 인물이 만들어 내는 섬세한 감정으로 차분히 따라가며, 첫 회부터 관객들에게 조용하지만 깊은 몰입을 이끌어냈다.

〈서재 결혼 시키기〉는 자살자의 죽음 이후 남겨진 자살 사별자(자살 유족)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아내 해원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지 1년, 성주는 여전히 해원이 죽었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차라리 혼자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 것에 가깝다고 느낀다. 심리상담을 전공한 친구 수영은 감정을 외면하지 말라고 조언하지만, 성주는 “부정하기보다는 실감을 얻으려 한다”고 말하며 애써 버틴다. 그러던 어느 밤, 두 사람이 함께 꾸린 서재에 죽은 해원이 찾아온다. 

작품은 자살의 이유를 설명하거나 해석하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 자살자의 선택을 둘러싼 추론과 책임 공방이 아니라, “왜?”라는 질문과 함께 남겨진 사람들의 시간을 따라가는 데 초점을 둔다. 자책, 분노, 혼란, 그리움이 뒤섞인 자살 사별자의 애도 과정을 좁은 보폭으로 따라가며, 자살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사회에서 상실을 겪은 이들이 어떤 시간을 통과하는지 조용히 비춘다.

작가 이경헌은 202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작 〈래빗 헌팅〉으로 이름을 알렸다. “트럼프 놀이로 세상살이를 비유하는 솜씨와, 손에 쥔 패를 쉽게 보여주지 않는 플롯”이라는 평을 받으며 필력을 인정받은 신예다. 〈서재 결혼 시키기〉에서는 자살 사별자의 시간을 다루면서도 감정을 부풀리지 않는 담백한 언어로 인물들의 내면을 쌓아 올린다.

연출 신명민은 창작집단 LAS 부대표로, 서울연극제 우수상 수상작 〈혼마라비해?〉를 비롯해 여러 작품에서 섬세하고 감각적인 연출을 선보여왔다. 이번 공연에서는 네 인물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애도하는 과정을 공연 시간 동안 차근차근 따라가며, 관객이 인물들의 변화를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도록 무대를 구성했다.

작가와 연출가의 섬세한 의도에 관객들 역시 깊이 공감하고 있다. 자살의 이유를 되묻는 것이 아닌, 남겨진 사람들의 애도에 시선을 두는 이 작품은 “자살 이후 남은 사람들의 아픔이 잘 전해진다”, “상실을 천천히 마주하게 해 주는 시간” 등의 호평을 받으며, 개막 첫 주부터 관객들의 공감과 찬사를 이끌어냈다.

연극 〈서재 결혼 시키기〉는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2025년 12월 21일(일)까지 공연되며, 티켓은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홈페이지와 NOL티켓을 통해 예매할 수 있다. (공연 관련 문의는 070-4147-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