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부엉이 기르기

나는 집에 부엉이를 기르고 있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다.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쉰 마리는 넘을 것 같다. 처음부터 이렇게 많이 기른 것은 아니다. 여행 갈 때마다 한두 마리씩 사들이다 보니 세월이 흘러 식구가 늘어났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부엉이 사육사이거나 부엉이를 전문적으로 기르는 농장주로 생각할 것 같다. 사실은 그게 아니다. 내가 말하는 부엉이는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부엉이 모양의 조각품이다. 외국에 가면 기념품 가게에 부엉이 모형을 많이 팔고 있다. 그것들을 여행 기념으로 하나둘씩 사서 모은 것이 책장 한 칸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많아진 것이다.

책장에 모여 있는 녀석들의 모양새는 제각기 다르다. 주먹덩이만큼 큰 놈도 있고, 밤톨만큼 작은 놈도 있고, 똑바로 앞을 바라보고 있는 놈도 있고, 옆으로 앉아 이쪽으로 고개를 틀고 있는 놈도 있다. 재료도 가지각색이다. 돌로 깎은 놈도 있고, 나무로 깎은 놈도 있고, 투명한 유리로 된 놈도 있고, 알록달록한 무늬의 자기(瓷器)로 구은 놈도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모양을 지닌 녀석들을 한데 모아놓고, 그 표정들을 살펴보거나 그것을 구매한 여행지를 떠올려보는 일이 그런대로 재미있다.

다른 동물들도 많은데 왜 부엉이를 모으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글쎄 그에 대해서는 똑 부러진 이유 같은 것은 없고 그저 부엉이가 좋아서였다고 하는 것이 옳겠다. 예전에 내가 셋방살이를 마치고 집을 장만할 때의 일이다. 집주인이 그 집터가 복이 들어오는 부엉이 둥지라고 했다. 그 말을 믿은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그 집에서 아이들 유치원 때부터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별 큰 어려움 없이 살았다. 부엉이 덕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스무 해를 무난하게 살았으니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부엉이가 다른 짐승보다 더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원래 나는 수집을 좋아하는 편이다.

무슨 물건이든지 손에 들어오면 함부로 안 버리고 한쪽에 모아놓곤 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오래 쌓여 거추장스럽다 싶어지면 그때 가서야 한꺼번에 버린다. 아내가 입버릇처럼 말하듯이 어차피 별 쓸모가 없는 것이라면 처음부터 치워버리면 방도 덜 어질러질 텐데 참 괴상한 버릇이다. 나에게는 타고난 수집벽(蒐集癖) 같은 것이 있는 모양이다.

학창시절 한때는 우표수집에 열을 올렸다.

무슨 의미를 알고 그런 것이 아니라 남들이 하니까 덩달아 모은 것이다. 우표를 오래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비싸게 팔겠다는 생각 따위는 없었지만 어쨌든 집에 우편물이 오는 족족 우표를 떼어서 하나씩 모아보았다. 나중에 우표수집용 앨범을 사서 종류별로 정리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것을 도둑맞고 말았다. 집에 놓아둔 것을 누군가 감쪽같이 가져가 버렸는데, 그 뒤로는 우표딱지는 보기도 싫고 흐지부지 중단되고 말았다.

성인이 되어서는 신문 스크랩에 열중했다.

신문을 읽다가 괜찮은 내용이 있으면 해당 부분을 가위로 오려서 파일북에 끼워 넣었다. 주로 문학이나 역사, 영화, 예술과 같은 분야인데, 몇 년 동안 그리했더니 파일북이 여러 권 늘어나 책장을 많이 차지하게 되었다. 나중에 또 읽어야지 하고 모은 것이지만 자주 눈길이 가는 것도 아니었다. 더욱이 인터넷 세상이 되면서 종이자료가 필요 없게 되는 터라 차츰 그 일도 시들해졌다. 아직도 내 책장 한쪽에 이것들이 가득 자리 잡고 있는데, 버리자니 옛날 정성이 아까워 우선 그대로 놓아두고 있다.

한때 잡지 창간호도 제법 모았다.

내가 서른 살 무렵에는 새로 나오는 문화예술 관련 잡지들이 상당히 많았다. 어느 잡지든 세상에 첫선을 보일 때는 그 나름의 포부를 지닌다. 또 무슨 일이든 새로 시작할 때는 출산의 고통을 겪기 마련이다. 만든 이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 창간호이기에 남다른 의미와 가치가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한때 신간은 물론이고, 고서 창간호까지 눈에 띄는 대로 족족 주워들었다. 어떤 이는 내가 그쪽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자기 책을 술값을 받고 양도하기도 했다. 지금 보면 그때 창간해서 여태껏 존속하는 잡지는 몇 개 되지 않는다. 가끔 이들을 뒤적이면서 옛 시절을 돌이켜보기도 하고, 거기에 실린, 지금은 세상을 떠났거나 노경에 접어든 사람들의 한창때의 모습을 보며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

내가 처음 부엉이 조각품을 구입한 것은 일본에서였다.

와카야마(和歌山)라는 곳에 갔는데, 특이하게 새까만 돌로 다듬은 부엉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집에 가져와 한동안 책상머리에 놓아두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서양 신화의 부엉이 이야기에 눈이 번쩍 뜨였다. 로마신화에 부엉이는 ‘지혜’를 상징하는 새로서 미네르바(Minerva)라는 지혜의 여신이 늘 부엉이를 데리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개를 편다.”는 독일 철학자 헤겔의 말도 있다시피 부엉이는 주로 밤에 활동한다. 그리고 잠을 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다고 한다. 눈을 뜬 채로 잔다는 것은 그만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세상을 살핀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이러한 부엉이의 자세야말로 글을 쓰는 나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닌가 싶었다. 모름지기 글 쓰는 이라면 밝은 곳보다 어두운 곳을 살펴야 하고 세상의 움직임을 예민하게 주시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잠을 자는 순간마저도 정신을 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야 언감생심 그럴 만한 그릇이 못 되지만, 그래도 겨자씨만큼이나마 그런 흉내나 내볼까 하면서 오늘도 책장에 옹기종기 앉아있는 부엉이들을 지그시 바라보는 것이다. 나의 부엉이 기르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 장병호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조선대학교와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수필가, 문학평론가로 등단하여 수필집 『코스모스를 기다리며』(2008)와『부엉이 기르기』(2021)를 비롯하여, 인물사『순천의 인물 100인』(2021), 평론집『소외의 문학 갈등의 문학』(2008)과『척박한 시대와 문학의 힘』(2019) 등을 펴내는 한편, 향토문화와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연자루에 올라 팔마비를 노래하다』(2013)를 펴낸 바 있다.